새로운 구상,
그리고 새로운 실험

글 : 조은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새로움이라는 형태로 나아가기
예술을 통해 전시공간이 아닌 생활공간에 개입하고자 하는 구상 속에서 기획자 유창희는 《각자의 개변》을 통해 새로운 실험을 시작해 보았다. 사실 창작에 있어서 새로움의 등장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구상으로 전시를 통해서 새로움을 추구해 보려는 기획자의 첫 시도는 새삼스럽게도 새롭고 또 소중하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통해 오늘날의 미술은 예배적 가치를 상실한 채 오로지 전시적 성격만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이후 아도르노는 우리가 과연 양심에 꺼리지 않고 서정시를 논할 수 있을지 질문하였고, 끔찍한 침묵 속에 등장했던 추상의 헤게모니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렇게 미술은 정치와 연결되었다. 현대예술은 예술을 통해 역사(혹은 운동)를 부정의 실천으로 읽어 내었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새로움을 발언하는 태도는 결코 정치적인 예술로만 읽혀낼 수 없다. 그리고 이미 오늘날의 예술은 더 이상 부정의 힘으로만 작동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을 기획자는 새로운 실험을 통해 동시대 미술, 특히나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자신의 생각을 전시로 구현하고자 시도하였다.
오늘날의 한국 미술계에는 여전히 전통미술과 민중미술, 그리고 상업미술과 모더니즘이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 근대의 형성기에는 외세로부터 ‘미술’이라는 개념이 이식되었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산업화가 급진적으로 진행되면서 개념미술이, 70년대에는 서구의 모더니즘 미술을 모방하고자 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미술계에서는 어렵지 않게 다음과 같은 유형의 미술가들을 찾아낼 수 있다. 정치적인 미술가들, 전체주의를 거부하는 미술가들, 성적 차이에 관심을 가지는 미술가들, 그리고 주어진 관념을 전복시키려는 미술가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혹은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위치를 입증하지 못한 지역작가들은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소여 된 미술계를 마주하게 된다. 동시대 예술, 특히 지역의 신진작가들이 구현하는 예술 작업에서 중요한 점은 주류의 흐름을 거부하고 순간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부터 새로운 예술은 다시금 시작될 수 있다는 부분일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학문과 달리 예술의 뛰어남은 과거의 위대함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과정에서부터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움이라는 가능성의 예술은 새로운 실험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기 확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시 《각자의 개변》은 공간과 사물, 현상들은 재정의 될 수 있고, 그 속에서 변화하는 속성을 서로 다른 장르를 통해 재발견하고자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의 핵심은 관습화된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전시공간에 드러난 가시성이 아닌 드러남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즉, 형태와 기능의 무한한 가변성)과 이들이 공유하는 예술적 토대(전시 구성)에 있었다. 즉, 유영하는 이미지와 흘러가는 사운드, 그리고 발화 행위를 숙고한 퍼포먼스 작업을 복기하며 창작자와 전시공간의 상호작용을 다시금 서술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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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열린 선율
TÆRI KIM와 SUN GIN의 음악이 두 시간 동안 연주되면서 여름 한낮의 한 광안리의 전시공간의 빛깔은 시시각각 달라졌다. 흘러가는 소리 위로 켜켜이 쌓여가는 열린 선율들이 비로소 한 공간에 만나면서 공간의 질감은 채워졌다. 두 사람이 이끌어내는 음악의 질감은 다소 상이했지만 연주자들의 움직임이 흡사했던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까닥거리는 무릎과 선율들이 마주치는 레이어는 주름의 형태로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특히 디제잉 퍼포먼스 중에 가시화된 다층적인 선율은 수축과 이완의 과정을 반복하며 라이브를 들으러 온 관람객들의 움직임처럼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전시 기간 내내 요리를 만들고, 주문된 식사를 먹으면서 사람들의 주고받은 대화 소리가 뒤섞이는 체험 속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가 다시금 실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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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열린 이야기로써의 회화
작가 김등용은 전시공간 주변의 잔여물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일상에서 보이는 작은 행동들과 무의식적으로 지나친 사물을 예술로 관객이 재수용하는 것을 기대했다. 자신의 창작행위 이후의 관객의 반응이 수반되어야만 아이디어는 완벽히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행위에 유희적 요소를 부여하며 사물의 특성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이 과정 속에서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설명을 강요하지 않았던 점이 작업에 공감과 설득력을 쥐여줄 수 있었다. 예술 유희는 창작실험을 통해 공간의 구조와 사물의 목적성을 변화시켰다. 나아가 작업에 사용된 청테이프는 또 다른 쓰임의 한 방편으로 전시에 활용되었다. 전시기획 중 가장 전시 공간과 흡사한 컨디션 속에서 제시되었던 작가 김은지의 작업은 유영하는 이미지의 모습으로 전시를 통해 표상화되었다. 평면의 회화작업과 영상이미지가 어떻게 한 공간 안에서 새로운 모양새를 가지는가에 대한 즉, 이미지를 통해 공간에 하나의 완결성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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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로소 자유로운 제스처
손한울 작가의 작업을 고통을 견디며 지속되는 수행행위로 갈무리하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짙다. 그는 글자만 남은 언어 ‘사랑해’와 이를 가시화 시킨 퍼포먼스 속에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졌고 사랑의 본질과 수행성이라는 공통된 질문의 당위성은 꾸준히 쓰임이라는 작가 특유의 제스처를 통해 획득될 수 있었다. 사실 라이브 퍼포먼스 과정을 다시금 읽어낸다는 것은 실연 당시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에 대한 대안이 아닌, 퍼포먼스의 특성을 다시금 숙고하려는 기술(describe)의 노력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어떻게 작가의 제스처가 수행되었고 어떠한 순서로 작가는 퍼포먼스를 구성하였는가가 관람 당시에는 중요하게 다가왔다. 이 외에도 전시공간 지하에 마련되어 있던 공중에 떠 있는 의자는 중력을 거부함으로써 자유함을 얻었다. 그처럼 작가는 사랑해라는 언어에 수행성을 부여함으로써 사랑에 빠진 사람 고유의 소유하려는 마음보다는 사랑이라는 개방된 행위의 가능성과 타인에게 다가고자 움직이는 희망의 가능성에 관심을 마음을 기울이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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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며,
기록과 기억의 한계. 즉 기억에 의존해서 지나간 전시를 기록하는 것에 대한 막연함. 그리고 전시가 끝나고 더불어 전시에 대한 이 글이 끝나는 순간, 세계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이 전시의 의미는 비로소 우리 앞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 기대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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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각자의 개변
전시기간 : 2024. 7. 26. ~ 8. 4.
전시기획 : 유창희
참여 예술가 : 김등용, 김은지, 손한울, SUN GIN, TÆRI KIM
전시장소 : 복합문화공간 헬멧